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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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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 21-07-30 18:44 2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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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간 지친 심신의 재충전 기회” vs “가족 단절·사생활 방종 우려”

김수영|입력 2017-06-09  |  발행일 2017-06-09 제35면  |  수정 2017-06-09인쇄

■ 결혼생활의 신풍속도 ‘졸혼’
졸혼에 대한 의견 분분
20170609
결혼생활과 그로 인한 부담·스트레스에서 졸업한다는 의미의 ‘졸혼’은 법적 혼인관계 정리나 가족의 분화 같은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졸혼 상태인 남편과 아내의 이성교제 등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한계론도 제기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결혼 이후 부부가 함께 지내야 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여기에 세상까지 변하면서 부부관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부부 백년해로’란 말이 퇴색되어 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혼인관계는 결혼과 이혼으로 양분됐다. 과거에는 이혼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많이 가졌으나 최근에는 이혼에 대한 시각이 많이 변했고 이혼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이혼이 가져오는 파장을 줄이는 세련된 적응기제로 졸혼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졸혼이 사회적 관심을 끌면서 ‘휴혼(休婚)’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결혼을 졸업하는 졸혼과 달리 결혼기간에 가족을 부양하느라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했던 사람이 일정기간 결혼생활에 휴식기간을 갖자는 의미다. 별거처럼 잠시 떨어져 생활하면서 그 기간에 각자 취미생활을 하고 사생활을 즐기자는 측면에서 결혼기간에 지친 몸과 정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혼에 대한 차선책·타협방안으로 주목
한집에 살면서도 독립적으로 지내거나
따로 살며 가끔 만나는 형태로 나눠져
이혼·별거와 달리 감정적 유대관계 지속

“각자가 성장하는 졸혼이 되기 위해선
부부가 지켜야 할 기본선 등 합의 필요
젊을 때부터 독립적 영역 구축해두면
굳이 졸혼 않고도 ‘따로 또 같이’가능”
일부선 ‘개인의 파편화’ 우려 목소리도


졸혼은 결혼생활을 파하는 것이 아니라 이혼하지 않고 혼인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남편과 아내로서의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각자의 여생을 즐긴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졸혼을 결정한 부부들은 예전처럼 서로 간섭하지 않고 그동안 자녀 양육, 경제활동 등으로 누리지 못했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한집에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독립된 생활을 인정한 삶을 살거나 따로 살며 가끔 만나는 형태로 부부관계를 유지한다. 이혼이나 별거와는 달리 서로에게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감정적 유대관계는 계속 유지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란 견해가 많다. 이혼하면 완전히 절연을 해야 돼 거기에 따르는 경제적인 문제, 자식과의 관계 등도 복잡해지는데 졸혼은 이러한 이혼의 부정적인 면을 줄여주는 타협방안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자녀 둘을 모두 대학에 보낸 김지영씨(가명·52)는 최근 졸혼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는 “남편과 각방을 쓴 지 이미 오래됐다. 아이들이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 문제를 남편은 물론 아이들과 상의해 결정하려 한다”며 “그동안 같이 살면서도 각자의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부부가 아니라 동거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혼은 법적 문제가 있으니 나도 부담스럽고 아이들에게 말하기도 미안하다. 하지만 그동안 가족들에게 내가 할 일을 할 만큼 했으니 졸혼은 이해해 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졸혼이라는 미명 아래 가족과의 단절, 사생활의 방종 등을 합리화한다면 이혼보다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가족관계전문가들은 “졸혼이나 휴혼이 수십년간의 결혼생활에 지친 중장년 부부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특히 오랫동안 가정생활에서 독립적이지 못한 남성들의 경우는 졸혼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백일섭이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서 보여주었던, 난생 처음 밥을 차려먹고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장면이 졸혼을 하면 남성들이 바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다. 돈을 벌어다주기 바빴기 때문에 집안일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아내에게나 자식에게 따뜻한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백일섭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남성들이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졸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먼저 남편 스스로 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집안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아내, 자녀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런 변화가 부부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설혹 졸혼을 하더라도 남성 스스로 건강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대구여성가족재단 정일선 대표는 “서로가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건강한 졸혼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간의 교류, 부부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선을 지킨다는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덧붙여 “굳이 졸혼이라는 선언적 관계 설정이 아니더라도 부부가 젊은 시절부터 각자 일상생활과 취미생활, 돈독한 교우관계 등 자신의 독립적 영역을 구축해둔다면 노후에 졸혼하지 않고 부부로서 ‘따로 또 같이’ 생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진단도 내렸다.

가족관계전문가들은 결혼의 책임과 이혼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졸혼이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면서도 졸혼이 한국사회의 파편화를 보여주는 한 측면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송유미 소장은 “근대 개인주의가 사람을 파편화시키고 있고 가족을 ‘호텔가정’으로 만들고 있다. 개인들은 관계를 할 줄 모르고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조차 호텔처럼 집에 있더라도 각자의 방에서 완전한 독립생활을 하고 음식도 룸서비스처럼 시켜먹듯이 방안에서 혼자 먹는 생활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아직 졸혼을 가지고 개인을 파편화시킨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한번은 생각해봐야 할 점”이라고 설명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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